알기쉬운 중국 도자사 개요(2)
5. 수(隋), 당(唐), 5대 시대(581~960)
당나라 초기에는 백자나 삼채(三彩)가 압도적으로 많이 생산되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당삼채(唐三彩)는
중국도자예술의 으뜸이다. 갈색 혹은 황갈색은 철을 안료로, 녹색은 동(銅)을 안료로, 남색유는 코발트를
안료로 한다. 기타 당나라 시대의 도자기는 남(南)에서는 청자를 주로, 북(北)에서는 백자를 주로
생산하였다.
즉, 남(南)에서는 월주요(越州窯)의 청자가 북(北)에서는 형주요(邢州窯)의 백자가 대표적이다. 백자는
수(隋)시대에 거의 완성되었으며 당(唐)시대에 들어와 생산량이 증대되었다. 당나라 후기에는
호남성(湖南省)의 장사요(長沙窯)에서 채화도(彩畵陶)가 만들어지는데 이는 하회(下繪)기법의
시작인 것이다.
당나라 말, 오대(五代)시대에는 남쪽지역에서 월주요 계열의 청자가 발전하였으며 경덕진요(景德鎭窯)에서는
백자 소성에 완전 성공하였으며 정요(定窯)에서는 더욱 치밀한 백자가 제작되었다.
6. 북송(北宋)· 남송(南宋)· 요(遼), 금(金)시대(960~1279)
이 시대는 중국 도자사상 최대의 번영을 누리던 시기이다.
가. 백자(白磁)
당나라 시대에 번영했던 형주요(邢州窯)는 점차 쇠퇴하고 대신 정요(定窯)가 송(宋)· 금(金) 시대의
백자제조기술을 대표하게 된다. 정요(定窯)에서는 태토의 치밀함과 순백색을 추구하여 재료를 더욱
정제(精製)하고 온화하고 윤택한 유약의 상태를 얻기 위해 노력함과 동시에 장식 기법으로는
인화(印花)기법을 최대한의 수준으로 만들었다.
나. 청자(靑磁)
북송(北宋) 초기에는 월주요가 생산량과 높은 품질을 자랑하였으나 북송(北宋) 중기이후에는
쇠퇴의 길을 걸어 용천요(龍泉窯)가 이를 계승하게 된다.
이 용천요 초기에는 회백색(灰白色)이 강한 청자유였으나 후기는 황색(黃色)을 띄게 되며
복건성(腹健省)의 동안요(同安窯)의 제품과 유사해진다.
당(唐)시대부터 남(南)쪽은 월주요, 북(北)쪽은 형주요로 대표되던 「南靑北白」이라는 국면이
북송시대에 들어와서는 그 상황이 바뀌게 된다.
남쪽 지역의 백자생산은 큰 변화가 없었으나 북쪽 지역의 여요(汝窯) 등지에서의 청자생산은
현재한 성과를 거두게 된다.
다. 흑유도(黑釉陶)
흑유의 소성도 송(宋)시대에 큰 발전을 보게 된다,
특히 철분의 결정에 의해 유약 표면에 다양하게 보여지는 반문 얼룩모양), 즉 철결정유가 대표적인
것이다. 철 결정유라고 하는 것은 유약 속에 포함되어 있는 철분이 포화상태가 되면 고온 소성 시
유약 속에 녹아 있으나 소성 후 식히는 과정에서 유약으로부터 분리되어 결정을 이루어 유약표면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
이 결정유로 유명한 곳은 복건성(腹健省)의 건요(建窯)이며 당대(唐代)부터 유명했던 다도(茶道)의
영향으로 차도구의 수요가 급증, 독특한 분위기의 흑유도(黑釉陶)가 애용되어 건요(建窯)는 더욱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역시 송대의 철결정유는 “유적천목유(油滴天目釉)”으로 기면 전체에 은성(銀星)이 퍼져있는
것과도 같은 걸작이다. 유적천목은 마치 기름이 뜨는 것과 같은 독특한 느낌을 주는데 대표적인
흑유라고 할 수 있다.
이 천목유는 건요(建窯)이외에도 하북성(河北省)의 정요(定窯)이외에도 산서성(山西省)의
회인요(懷仁窯) 등 북방지역에서 주로 생산되었다.
라. 청백자(靑白磁)
청백자는 송(宋)시대의 경덕진(景德鎭)에서 시작된 것으로 빛을 통할 정도의 얇은 태토에 푸른 빛의
투명유를 시유하여 일종의 “옥(玉)의 질감을 추구한 것으로 “가옥기(假玉器)”라고도 하며 “영청(影靑)”
이라고도 한다. 송(宋)시대에 매우 유행하였으며 강서성(江西省)과 주변등지에서 제작되었다.
역시 경덕진(景德鎭)의 청백자가 유명하다.
7. 원(元)시대(1234~1368)
원(元)시대는 중국 도자사에 가장 중요한 시기다. 송(宋)시대의 도자기 발전의 기반이었던 용천요(龍泉窯),
자주요(磁州窯), 균요(鈞窯), 길주요(吉州窯)등의 도요지에서 그 중심이 경덕진으로 옮겨가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경덕진은 다음 시기인 명대(明代)의 요업 중심지로서 그 위치를 확립해 나가기 시작했다.
청화자기(靑華磁器)는 백토소지에 코발트를 이용한 푸른색 문양이 들어간 자기다.
이것은 성형한 기물에 코발트로 문양을 그리고 투명유로 시유해 1,300℃의 고온에서 소성한 것이다.
유약 밑(釉下)의 청색의 청량감과 백자의 대비가 상쾌함을 준다. 14세기 후반 경덕진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제작되었다. 또한 유리홍(釉離紅)이라 하여 청화백자와 같은 유하채(釉下彩) 장식으로
코발트 대신 동(銅)이 안료로 사용된 자기도 제작되었으나 청화자기보다 제작량이 적었고 완성도에
있어서도 청화자기의 수준에 미치지는 못하였다.
8. 명(明)시대(1368~1644)
원(元)시대의 청화나 유리홍(釉離紅)자기와 함께 동홍색유(銅紅色釉), 상회(上繪)로서의 금채(金彩)
기타 색회(色繪)자기가 명대(明代)에 소성되었다는 것은 기술적인 조건이 완숙해 졌음을 의미한다.
원대(元代)까지 명맥을 유지하던 용천요(龍泉窯), 자주요(磁州窯), 균요(鈞窯) 등은 경덕진에서의 각종
채자기(彩磁器)나 여러 종류의 단색유 제품이 만들어지면서 명(明) 중기 이후로는 급격히 쇠퇴하게 된다.
예를 들어 자주요(磁州窯) 계열의 백지흑화문(白地黑花紋)의 도기는 일반인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것이었으나 경덕진의 청화자기와 비교해 보면 태토(胎土)나 유약의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히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각지의 도요지가 쇠퇴의 길을 걸을 때에 그 곳의 우수한 도공들이 경덕진으로 모여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리적인 환경, 풍부한 자원, 고도의 기술이 준비된 경덕진은 내외 시장의 수요증가와 함께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된다.
9. 청(淸)시대(1664~乾隆 1795)
17세기 중기에서 18세기 말에 이르는 건륭(乾隆)의 강희(康熙), 옹정(雍正), 건륭(乾隆)의 3대(代)는
중국 도자기 역사 중에 기술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에 도달했던 시기이다. 예를 들어 강희(康熙) 청화는
선명하고 화려한 색조를 보여주었으며 강희(康熙) 오채(五彩)는 유약 위에 남채(藍彩)와 흑채(黑彩)를
가능 하게해 명대(明代)의 색채보다 훨씬 다양해진다. 그리고 소성온도가 조금 높아짐으로해서
전체 색조가 밝아지기도 하였으며 명대 중기에 쇠퇴했었던 동홍채(銅紅彩)나 유리홍(釉離紅)도
강희년, 옹정년에 다시 진전을 보인다.
특히 청대에는 새로운 제품이 매우 다양하게 생산되는데 새로운 유약의 개발은 물론 송(宋)시대 등의
옛도자기 형태를 모방한 것이라든지 금속기, 목기, 석기 등을 모방한 것들과 외국의 도자기를
흉내 낸 것들도 보인다.